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문단 편집) ===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파헤이라 감독이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31세 때인 1974년 브라질 리그의 명문 구단으로 [[리우데자네이루]]를 연고로 하는 [[플루미넨시 FC]]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부터였다. 그는 그곳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은 뒤 1978년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당시 쿠웨이트는 [[오일머니]]로 대대적인 축구 붐을 일으키고 있던 상태였는데 브라질 출신의 파헤이라를 감독으로 영입한 이유는 다가올 [[스페인 월드컵]]에서 쿠웨이트를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올리기 위함이었다. 그가 감독 신분으로 처음 출전한 메이저대회는 바로 [[1980년 AFC 아시안컵]]이었다. 이 때 그가 이끄는 쿠웨이트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말레이시아]],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아랍에미리트]]와 함께 B조에 속했는데, 쿠웨이트는 1차전에서 아랍에미리트와 1 : 1로 비기고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3 : 1로 꺾었으나 조 최강자였던 대한민국과의 3차전에서는 0 : 3으로 패하며 먹구름이 들어쳤다. 다행히 4차전에서 카타르를 4 : 0으로 꺾어 대한민국에 이어 조 2위로 4강에 오르게 되었고, 4강전에서는 이란을 만나 2 : 1로 꺾고 결승전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공교롭게도 조별리그에서 대패당한 대한민국이있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우승을 점쳤으나 이번에는 쿠웨이트가 반대로 3 : 0으로 승리하면서 결국 우승을 따내 파헤이라는 쿠웨이트에 사상 첫 아시안컵 우승을 선사하게 되었다. 이후 [[스페인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쿠웨이트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말레이시아]],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태국]]과 함께 3조에 속하게 되어 1차전에서 태국을 6 : 0으로 대파하고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4 : 0으로 대파했다. 한편, 조 내에서 강력한 경쟁자였던 대한민국도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2 : 1로 꺾고 2차전에서 태국을 5 : 1로 꺾으며 이제 대한민국과의 맞대결에서 최종예선 티켓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주심을 맡은 콜롬비아 국적의 심판이 시종일관 석연찮은 판정을 남발하면서 대한민국은 편파판정 속에서 불리한 경기를 치르는 와중에 결국 후반 6분 대한민국은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쿠웨이트를 상대로 공격을 퍼부었고 마침내 [[이태엽(축구인)|이태엽]]이 [[세트피스]] 찬스에서 완벽한 헤딩골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 문제의 콜롬비아 심판이 수비수를 방해했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득점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후에 영상을 확인해본 결과 '''이태엽과 쿠웨이트 수비수는 몇 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이에 [[이태호(축구)|이태호]]가 나서서 항의했지만 주심은 도리어 이태호를 퇴장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에 일렀다. 결국 멘탈이 흔들린 한국은 끝내 종료 직전 한 골을 더 허용하면서 쿠웨이트가 2 : 0으로 승리해 최종예선에 올랐다. 최종예선에서 쿠웨이트는 [[뉴질랜드 축구 국가대표팀|뉴질랜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와 한 조에 속하며 최종적으로 쿠웨이트가 4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하게 됐다. 24강 본선에서 쿠웨이트는 축구종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슈퍼스타 [[미셸 플라티니]]가 버티고 있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 그리고 동유럽의 강호 [[체코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체코슬로바키아]]와 함께 4조에 속했다. 이들 사이에 낀 쿠웨이트는 그야말로 [[승점자판기]] 신세에 불과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쿠웨이트는 1차전에서 동유럽의 강호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1 : 1 [[무재배]] 승점 1점을 얻는 기적을 연출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쿠웨이트가 이 조에서 [[고춧가루]] 노릇을 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었'''다! 그러나 2차전에서 쿠웨이트는 프랑스에 대패했다. 그냥 지기만 했으면 실력 차이려니 했겠지만 이 경기에서 쿠웨이트는 온갖 추태란 추태는 다 선보였다. 1 : 3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35분, 프랑스의 4번째 골이 터졌는데 쿠웨이트 선수들은 [[소련]] 출신 주심에게 관중들의 [[피리(악기)|피리]] 소리를 주심의 휘슬로 착각하여 플레이를 정지시켰다며 어필했다. 그러나 소련 출신 주심은 쿠웨이트 선수들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양팀이 옥신각신하며 7분이 넘는 시간을 지연시켰고 이 때 쿠웨이트 축구협회장을 역임하던 셰이크 파하드 왕자가 그라운드로 난입, 선수단 철수 명령을 내렸고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사태를 알아차린 소비에트 연방 출신 주심은 프랑스의 득점을 무효로 선언했다. 이렇게 어거지로 1골을 취소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종료 직전에 1골을 더 내줘 1 : 4로 대패를 당했다.[* 그 후 소비에트 연방 출신 주심은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고, 쿠웨이트 축구협회장에게도 엄중히 경고가 내려졌다. 쿠웨이트 협회에도 25,000파운드의 벌금이 부과되었다고 한다.] 이제 쿠웨이트가 2라운드(12강)[* 당시 2라운드는 12강이었고 토너먼트가 아닌 12강 조별리그였으며, 그 다음 각 조 1위가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상대인 잉글랜드를 무조건 이기고 체코슬로바키아가 프랑스를 잡아줘야 했다. 그런 다음에 또 체코슬로바키아와 득실 차를 비교해야 하는 매우 복잡한 [[경우의 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쿠웨이트가 잉글랜드를 이길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고 결국 0 : 1로 아쉽게 패해 1무 2패 조 4위 월드컵 21위로 마감했다. 대회가 끝난 후 그는 쿠웨이트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